어쩐지 과민한 날에.
모레 이사할 그 곳을 선택한 것은 정사각형 작은 정원 너머로 트레인이
지나가고 그 모습과 소리가 성가시지 않고 보기 좋고 또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케이트 모스와 장을 같이 보는 동네라는 말에 혹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케이트 모스를 마트에서 보게 되면 짐짓 태연한 척 하며
그녀를 추적할테지만.
이스트덜위치,이 곳에서의 몇가지 약속들은
지켜질까? 여름에 독일의 시골 마을에 캠핑 가는 거라든가,
봄에 레고랜드에 가기로 한것들.
어떤 것은 지켜질 것이고 어떤 것은 이미 지켜지지 못한다.
영어도 뒤죽박죽인데 한국어도 뒤죽박죽이다.
한국말을 할 때도 어순을 생각하느라 눈이 위로 올라가고
자기가 생각해도 말의 순서가 어색하니 손바닥을 답답한듯 돌린다.
어색해서 픽픽 웃다가 갑자기 현기증이 나며 무대에서 내려오고 싶은
기분이다.
모처럼 시내 옥스퍼트 스트릿에 있는 일식집 사쿠라에
갔다.혼자라서 흰 셔츠를 입은 삼십 후반쯤 되어 보이는 동양 남자가
앉은 합석자리로 안내되어졌는데 이렇게 낯모를 사람과 합석을 하게 되면
상대방을 의식할 수 밖에 없어 난감하다.
아무튼 코를 박고 밥딜런의 빨간 가사집에 집중하려니
그 사람이 말을 걸며 여기가 유명한 집이냐고 물어본다.
그런 것 같다고 하니 어느 나라 사람이냐기에 한국 사람이라고 했더니
자기도 한국 사람이라며 출장차 잠깐 머무는데 또 좋은 일식집이 어딨냐고
물어본다.어차피 한국음식점은 맛없고 비싸기만 하니까 차라리
일식집이 좋은 것 같다며. 그래서 차이나 타운쪽으로 가보시라라고
말해주었다.그렇게 섬세하지 않은 정보전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제대로 알려주려면 약도를 그려주거나 같이 가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출장차 나온 런던에서, 이방인과의 짧은 대화와 만남에
이상과 낭만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를,어떤 여자들에게는 호감을 살 수 있을
느끼한 남자를 피해 나온 거리는 또 다시 비가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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